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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양진모/경기필하모닉의 마스네 베르테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작성3달 전조회623추천3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랜만에 오페라를 보고 왔습니다.
4일간 열린 서울시오페라단의 쥘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 공연 중

3일째인 지난 5월 3일 금요일 공연이었습니다.

 

3층 B석(3만원)은 매진되어 전혀 표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2층 A석(5만원, 20% 국민카드 할인해서 4.1만원)을 예매했습니다.
작품의 인기도에 비해 살짝 비싼 표값 때문인지 비싼 자리의 예매는 부진한 편이었고
실제 2층의 좌석은 저렴한 A석은 거의 찼지만 S(8만원), R(10만원), VIP(12만원)석은 빈 자리가 더 많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세종문화회관을 갔던 것은

역시 서울시오페라단의 2014년 5월 베버의 "마탄의 사수" 공연이었습니다.
당시가 세월호 참사 직후여서 공연 직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이 먼저 연주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오케스트라는 경기필이었습니다.
그간 세종문회화관에선 모두 1층에서 관람을 했었는데 이날은 저로선 처음으로 2층에서 본 공연입니다.

 

2층 맨앞에서 보니 (저는 이날 쌍안경을 가지고 갔으며, 공연 시작 5분 전에 대형 메뚜기로 변신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의 오케스트라 피트(Pit, 구덩이)가 비교적 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 공연과 무관하지만 세종회관의 오케스트라 피트가 모두 올라온 사진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오페라에선 오케스트라 피트가 좁아 일반 교향곡처럼 단원들이 배치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관악기가 위치한 무대 오른쪽을 선호하는데

이날도 모든 관악기는 객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배치됐습니다.
맨 오른쪽에 팀파니 등의 타악기가 배치됐고

호른 주자들 바로 앞줄 (객석에서 보아 더 왼쪽)에 알토 색소폰 주자가 정면으로 보였습니다.
지휘자 바로 앞에는 첼로 주자들이 배치됐으며 그 오른쪽에 비올라 주자들이 앉았습니다.
피트 왼쪽에는 모든 바이올린 주자들과 1대의 하프 그리고 피트 맨 왼쪽 끝에 콘트라베이스가 보였습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제 자리에서 모두 보이지 않았지만 4명으로 추정됩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너무 거대한 규모와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요즘에는 클래식 콘서트는 거의 열리지 않습니다.
무대도 넓지만 객석의 좌우 폭이 너무 넓어서 홀이 소리를 전혀 모아주지 못해
소리가 메마르고 무엇보다 음량이 작은 것이 단점인 홀입니다.

 

잔향이 짧기 때문에 그나마 가수들의 딕션은 잘 전달되는 장점이 있어서
서울시오페라단이 기획한 오페라만 연 2회 정도 올려질 정도로 인기가 없는 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날 오페라 공연에서는 회전식 대형 무대장치가 쓰였는데 이런 좋은 무대장치를 가진 홀에서
1년에 겨우 2번, 봄에 4일 그리고 가을에 4일 오페라 공연이 열린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음량이 작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오케스트라 편성을 늘리면 좋겠지만
피트가 좁은 편이라서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이날 공연도 결과적으로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더 추가되었더라면

훨씬 더 풍성한 음향을 들려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음악감상자로서 저는 평소 오페라는 모차르트-베토벤-베버-바그너-슈트라우스 라인을 좋아해서

독일 작곡가 편향이 심한 편입니다.
아마 상설 오페라극장이 있는 유럽 도시를 방문했는데 베르테르가 공연 중이었다면

다른 날짜의 다른 오페라를 선택했을 것이지만
이제 매주 공연에 대해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인 저로서는

억지로라도 새로운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은 몸에 좋은 보약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저로 하여금 이 오페라를 보고 싶게 했던 두 가지 동기는

경기필이 오케스트라로 참여한다는 점과
그나마 작곡가 쥘 마스네가 생전에 바그너를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마침 공연 전에 들은 도밍고/파스벤더 콤비의 로페즈-코보스 지휘

1977년 바이에른 실황 (ORFEO) 음반에서 바그너 느낌이 물씬 나서
내심 그런 사운드를 기대했었습니다.

 

가수들도 모두 낯설지만 주연을 맡은 테너 신상근 씨가

작년에 비록 대타이긴 하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맡은 바 있다는 사실도 공연 전에 알게되어 기대가 컸습니다.

이날 지휘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하시고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휘해온 양진모 씨가 맡았습니다.
양진모 씨와 경기필은 이날 시종일관 매우 밀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3막에서 편지 장면이 끝나고 소피 앞에서 부르는 샤를로트의 아리아에서 반주로 등장하는
알토색소폰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습니다. 샤를로트를 맡은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씨의 고른 목소리와
알토색소폰의 따듯한 소리가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실연이 아니고서는 이런 입체적인 소리를 절대로 들을 수 없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1막에서 베르테르가 처음 만난 샤를로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트럼펫을 화려하게 울려
좀 더 기쁨에 찬 소리를 들려줬다면 그 부분을 경계로 해서

그 앞부분과 그 뒷부분이 선명한 대조를 이룰 수 있을 텐데
1막의 이 부분은 이미 뒤에 있을 비극을 예감하고 있다는 듯 낙천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지휘자가 의외로 강조했던 부분은 3막에서 성탄절에

자신을 찾아온 동생 소피와 작별하고 나서 다시 불러 포옹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그렇게 극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아님에도

그 때까지의 오케스트라 음량 중 가장 크게 터져나와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날 오케스트라 피트 가운데 위치한 첼로 소리는, 피트 뒷벽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그 음색이 매우 짙으면서도 풍부한 음량을 들려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이올린 파트는 소리가 잘 뭉치지 않고 너무 밝은 소리가 났습니다.
지난 4월 1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들은 경기필의 바이올린 소리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은 바이올린 소리는
같은 오케스트라가 맞나라고 할 정도로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4년 마탄의 사수에서 들었던 기억도 이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테너 신상근 씨의 자음 파찰음이 유달리 크게 들려서

이 홀의 고음 부분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제 자리가 2층이라서 그랬겠지만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올라와 첼로는 아주 어두운데 비해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 밝아서

기대했던 중후한 소리를 현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목관과 금관 및 타악기 파트는 음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실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4일 밤을 연속해서 공연하는 경기필이 대단하다고 생각됐습니다.

주연을 맡은 신상근 씨의 목소리는 유명한 테너로는 제겐 로베르토 알라냐를 연상시켰습니다.
알라냐보다는 조금 더 어두워서 고뇌하는 베르테르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습니다.
5월 1일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이라, 체력적으로 지쳐서 그런지 그 음량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클라이막스에서 공간을 좌악 가르며 송곳처럼 내지르는 소리는 놀라웠습니다.

 

여자 주인공 샤를로트 역의 김정미 씨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주 고르고 군더더기 없는 대단히 훌륭한 목소리를 가진 메조소프라노였습니다.
음량도 매우 커서 베르테르와의 이중창에서는 종종 테너를 압도했으며
홀 전체를 가득 채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손쉽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음반에서 초연 때와 달리 리릭 소프라노들이 이 역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젤라 게오르규나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그런 식이 아니라 브리기테 파스벤더를 연상시키는 진짜 메조소프라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파스벤더의 녹음들 중에는 ORFEO 음반보다는 Petr Weigl 감독의 1986년 영화와 더 비슷합니다.

 

연출가 김광보 씨는 샤를로트를 일종의 팜므파탈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3막에서 베르테르에게 안겼다가 깜짝 놀라 이별을 선언하면서 도망치듯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베르테르에게 작별의 스킨쉽을 해주는 장면이 딱 그렇습니다.

 

이런 연출은 이날의 김정미 씨의 목소리와 매우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샤를로트의 우유부단함이 베르테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해석에 동의합니다.

 

소프라노가 샤를로트를 부를 경우 청순미가 강조되면서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의 경우 메조지만 청순)
그러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작곡가는 어느정도는 카르멘과 같은 치명성을 의도했기에 메조소프라노를 택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샤를로트의 쿨함이 살짝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 낮에 다른 음반들을 들어보니
김정미 씨가 좀 더 고음을 사용해서 애절하게 연기했다면 좀 더 감정적 진폭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샤를로트의 남편 알베르 역의 공병우 씨는 바리톤보다 좀 더 낮은 베이스 바리톤처럼 들렸습니다.
흔히 접할 수 없는 깊은 목소리여서 인상적이었습니다.
1막에서 독백으로 부르는 대목에서 좀 더 섹시한 매력을 느끼게 해줬다면 
베르테르-샤를로트-알베르의 삼각관계의 한 축이 더 튼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의상이나 무대 디자인은 한국식이었습니다만 그 형식만 그렇지 막상 내용은 도리어
한국적인 요소가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의상은 1막의 소피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 소화해낼 수 없는
어색한 서양식은 전혀 도입하지 않고 한국의 부유층들이 즐겨 입을 듯한

선명한 색채의 밝은 의상들이 쓰였습니다.
샤를로트도 1막에서는 밝은 분홍색을 입었지만 비극적인 2막 이후에선

짙은 남색 계열의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한국인 여성의 옷을 입었습니다.

 

소피나 샤를로트 아버지의 친구들과 같은 조역들에서

한국적인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연출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조연들을 흡사 뮤지컬에서 등장할 것 같은 잔뜩 빼입은 멋쟁이들만으로 설정하다보니
그런 현실적인 느낌을 개입시킬 여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영화적인 무대와 의상이라면 좋았겠는데,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팜플렛에 있는 3막 무대 그림)

 

무대의 경우 1막에서 무도회 장면을 회전식 무대 장치로 매끄럽게 보여주고 넘어간 것은

돋보이는 부분이었지만
막상 무도회가 끝나고 베르테르가 샤를로트를 집에 바래다 주는 장면은 잘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이 장면에서 보름달을 무대 뒤로 크게 비춘 것 외에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 장면에서 거대한 고목이나 푸른 들판이 등장하는 연출이 흔한데
있는 듯 없는 듯한 앙상한 나뭇가지들로는
베르테르가 샤를로트에게 고백하는 용기를 얻기에는 대자연의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3막의 중요한 소품인 권총도 좀 거슬렸습니다.

권총만 달랑 건내주는데 '그럼 총알은?' 이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무래도 공간적인 설정이 한국이다 보니 권총이 등장하는 장면의 어색함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날 막간에는 막 위로 계절을 상징하는 듯한 영상이 프로젝터로 보여지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4막 직전에는 3발의 총성과 함께 총알 자국이 보여지기도 했죠

(강렬한 1발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끝으로 이날 팜플렛에는 지적되지 않았지만 이 오페라 대본에는 치명적인 헛점이 있습니다.
3막에서 베르테르가 샤를로트의 집에 있는 피아노나 책을 만지면서 둘이 보낸 추억을 얘기하는데
1막에서 초면이었던 두 사람이 언제 그런 추억을 쌓았단 말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1막이 끝나고 막간에 영상을 삽입해서 결혼 전에라도 알베르의 호의로

베르테르가 샤를로트와 추억을 쌓은 적이 있다는
영상을 보여줬다면 대본의 단점이 해소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시오페라단의 훌륭한 기획 덕분에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던 베르테르에 푹 빠져서 1주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내년 봄 공연에도 참신한 오페라가 기획되기를 기대합니다.

작성 '19/05/05 23:03
th***수정 삭제
km***:

서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다른 좋은 공연장에 밀려서 푸대접을 받는군요.
지방에는 공연장에 공연대관이 없어서 늘 한가합니다. 여수 예울마루 기준입니다.
그나마 부산문화회관 정도만 가도 공연이 자주 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세종문화회관처럼 지방에 한두개씩 있는 공연장은 대부분 좌석수에 치중한 설계이다보니 소리따위는 고려가 전혀 안되어있는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문화현실입니다.

공연후기 잘 봤습니다.

19/05/0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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