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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선이오페라앙상블, 정금련/서울바로크플레이어즈의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작성3주 전조회296추천0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여작인 선이오페라앙상블의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를 보고 왔습니다.
장소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으로 오페라극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이었습니다.

 

이 공연장은 221석밖에 되지 않는 작은 홀로, 사진으로 봐도 오케스트라 피트가 위치할 공간이 되지 않고
티켓 가격도 최저가격이 3만원이라, 애초에는 참석할 계획이 없었던 공연입니다.

 

그런데 공연 정보를 다시 보니 레치타티보는 모두 한국어로 하고

노래만 이탈리아어로 한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재밌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뒤늦게 예매를 했습니다.
제가 예매한 공연 4일 전만 해도 빈 좌석이 많아서 3층에 아무 자리나 고를 수 있었는데
당일 공연장에는 90% 정도의 좌석이 찼습니다.

 

로비에서 천원에 산 팜플렛을 좌석에 앉아 펼져보니
서울바로크플레이어즈는 4명의 현악4중주로 되어 있고, 실제 겨우 사람 1명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피트에는 좌측에 피아노와 가운데 지휘자 석, 그리고 좌우로 현악 4중주단이 앉아 있더군요.
솔직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것이라면 서울바로크쿼텟이라고 썼었어야죠...

즉, 반주는 현악 4중주와 음악코치 2분이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연주하는 편곡된 방식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2명을 포함 고작 6명 앞에서 지휘봉을 들게 된 지휘자님께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공연 시작도 전에 3만원 티켓 가격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일렀습니다. 이날 대사 말마따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만족스러웠고, 코지 판 투테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힘은 바로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연출에 있었습니다.
연출을 맡은 이혜영 씨가 보여준 무대는 여지껏 이 오페라에서 제가 접해보지 못한 신세계였습니다.
음반이나 영상물로는 절대 접할 수 없을 경험이라는 점에서 앞서 티켓 가격에 대한 생각이 바꼈습니다.

 

유럽에서 이 코지 판 투테의 연출들을 보면 2000년대초까지만 하더라도
주인공 두 커플에 촛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돈 알폰소는 나이 많고 매력 없는

노신사로 설정되어 있는 연출 뿐이었죠.
그러다가 걸출한 바리톤 보 스코부스 (Bo Skovhus)가 돈 알폰소 역을 맡은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부터
돈 알폰소가 주인공인 공연 (Cluas Guth 연출)이 등장했습니다.

 

제가 유럽의 연출을 모두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는데
적어도 영상물을 통해 본 코지 판 투테는 그렇습니다.

이날 연출은 지난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완벽한 한국적 업그레이드였으며,

훨씬 더 재밌고 웃겼습니다.
장소는 대학교 강의실. 책걸상과 화이트보드가 앞에 있길래 혹시 Jürgen Flimm의

2000년 취리히 연출과 유사하게
돈 알폰소가 교수님으로 나올까 예상했었는데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이날의 돈 알폰소는 페란도와 굴리엘모의 대학 후배로 나오는 파격적인 설정이었습니다.
날라리 '알폰'이 순진한 선배 '페란'과 '굴리' 형들에게 추바춥스를 입에 물고
연애상담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장면부터 한국어 대사로 대화하는 세 명의 남자들은 영락없는 요즘 대학생들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탈리아어로 된 가사에서 이날 연출의 설정과 모순되어 써먹을 수 없는 노래들이 생기는데
1막 돈 알폰소가 자신이 회색머리의 나이든 사람이란 가사가 나오는 첫 곡부터 삭제되고
바로 2번째 3중창으로 오페라의 첫 중창이 시작됐습니다.

 

문제는 트럼펫도 없고 팀파니도 없는 이날 반주로는 3번째 곡 3중창을 부를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1막에서 가장 흥겹고 남성적인 Una bella serenata가 삭제됐더군요. 이건 정말 아쉽습니다.
이 연출 그대로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공연이 리바이벌 된다면 꼭 이 장면을 넣어서 듣고 싶습니다.

곧이어 등장한 '피오'와 '도라'가 남친들 외모를 찬양하며 부르는 2중창에선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귀가 딱딱 맞아들어가는 연출이었습니다.

 

역시 금관과 타악기가 없다보니 입대를 알리는 군대 합창도 1막에서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2막에서 반전을 위해서 필요한 포석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장치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음악적으로나 연출적으로 이날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어지는 1막에서 가장 중요한 3중창, 두명의 여 주인공과 알폰소가 부르는 Soave sia il vento는 좋았습니다.
지휘자님도 이 부분의 템포를 충분히 느리게 잡고, 각 성부의 가수들을 도드라지게 강조했습니다.

 

이날 연출의 하이라이트는 페란과 굴리가 Seoul Natl Univ.가 선명히 새겨진 소위 '과잠' (야구점퍼)을
입고 서울대생으로 변장해서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절묘한 한국적 연출에 무릎을 쳤고, 얼마나 통쾌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 3명을 제외하면 반주부터 연출까지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 스텝들이
선택한 연출이란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세태 풍자였습니다.

 

소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입대 소식을 알리며 두 남자 주인공이 병나발 불던 소주병과

괴로운 심정을 달래던 두 여자 주인공이 마시던 아사히나 캔 맥주병이 기억에 남습니다.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바로 2막으로 이어졌고
극 흐름상 절대 생략될 수 없는 군대합창 소리는 10명으로 구성된 꿈꾸는 어린이합창단이
1층 객석에서 무대 쪽으로 나오면서 불려주는 방식으로 소화됐습니다.
제작비를 아끼려는 궁여지책이었겠지요.

 

2막에서도 몇가지 아리아와 중창이 삭제되면서
보통 3시간 정도 걸리는 공연시간은 2시간 20분정도로 줄여져 있었습니다.

이날 가수들은 대체로 훌륭했지만 특히나 돈 알폰소를 맡은 전태현 씨와
데시피나 역의 장지애 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전태현 씨는 흡사 방금 개그콘서트를 찍고 온 김원효 씨를 연상시킬 정도로
출중한 연기력으로 극 전체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주었습니다.
거의 원맨쇼 분위기였으며 음악적으로도 풍성한 성량과 높은 기량을 선보여주었습니다.

 

데스피나 역의 장지애 씨 역시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녀는 가죽점퍼를 입은 또 다른 날라리로 등장했으며
이태리어로 부르지만 '짐승', '그놈이 그놈', '엔조이' 등을 화이트보드에 써내려가는 장면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녀의 연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왜 다른 두 여자 주인공들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가벼운 소프라노의 목소리도 배역에 딱 맞았습니다.

 

또 굴리엘모 역의 바리톤 김승태 씨가 좋은 발성과 딕션을 들려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적으로 가장 비중이 높은 피오르딜리지 역의 소프라노 이세진 씨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열창을 들려줬습니다.

결론적으로 18세기에 작곡된 작품이지만 창의적인 연출과 한글 레치타티보가

얼마나 현재에도 그대로 유효한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다음날 역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있은 나비부인도 관람했습니다만
같은 페스티벌에 참여한 두 공연에 이토록 다른 규모의 예산이 투자된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술의전당에 오케스트라가 앉을 수 있는 피트가 마련된 소규모 오페라극장이 없다는 것이

1차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오늘 낮에 코지 판 투테 영상물들 보고 있자니

이날 제대로 듣지 못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대한 갈증이 생깁니다.
이 연출 그대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리바이벌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성 '19/06/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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