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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1번 이야기 (1)
작성1년 전조회8881추천9

모든 음악이 그렇듯이 말러(Gustav Mahler)의 1번 교향곡을 보는 관점 또한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말러가 이 교향곡에 ‘타이탄(Titan, 거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가 후일 삭제해버린 것도 사람들이 그 제목으로 인해 자신의 교향곡을 이해하는 시각이 제한될 것을 걱정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아래의 내용 또한 흔히 듣기 어렵다고 말하는 말러 교향곡 1번의 감상을 돕기 위한 차원의 여러 가지 해석 가운데 하나 정도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명연주가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젊은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의 연주 동영상을 중심으로 말러 교향곡 1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1악장

 

1악장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의 소리들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시작부터가 엄청 독특한데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하기 전 오보에가 연주하는 라(A) 음에 맞춰 조율(Tuning, 튜닝)하는 것은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말러 1번 교향곡 1악장은 오케스트라 조율의 기준이 되는 그 라(A)음을 모든 현악기가 조용히 하모닉스(현악기 현에 살짝 손만 갖다 댄 채 현을 활로 문지를 때 나는 높은 배음)로 깔면서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시작은 말러 전에는 거의 대부분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 위로 관악기들이 하나 둘씩 가세하면서 마치 새벽 들판에 동이 트는 듯 (또는 생명이 서서히 움트는 듯)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서두에서 이렇게 관악기들이 연주하는 하행 4도(A-E)가 이 교향곡의 골격을 이룹니다. 곧 이어 나오는 뻐꾹 뻐꾹 하는 새소리는 물론이고(실제 뻐꾸기의 울음은 하행 3도임) 1악장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팀파니 타격 등도 모두 하행 4도 음정이고, 2악장과 3악장의 시작 역시 모두 하행 4도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하행 4도 집착증 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두 번 연속되는 하행 4도(A-E-F-C, 계이름으로 쉽게 설명하면 라–미-파–도) 음형이 결국 4악장에서 승리의 주제(46:25)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내용이 이미 자연을 묘사하고 있는 이 1악장 서두의 기저에(1:01 또는 3:46) 숨어 있다는 점이 1번 교향곡의 감상의 포인트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청년 시절에 겪은 뼈아픈 실연의 쓰라림, 그 고통을 이 대자연에 담겨 있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로 극복하고 미래로 당당히 나아간다는 것이 이 교향곡에 관한 말러의 거시적 프로그램(big picture plan)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각설하고, 이 1악장에서 말러는 교향곡 역사상 처음으로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바깥으로 나가서 저 멀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게 합니다(2:05 이하). 마치 숲속 어떤 먼 성의 기상나팔 같이 팡파르가 울리는데, 이로 인해 무대(스테이지)가 엄청 넓어지고 원근감이 생기지요. 이렇게 무대 밖(off stage)에서 조용히 불어대는 트럼펫은 마치 미술에서 소실점처럼 작용해서 같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관악기들이 음향에 원근감을 주고 묘사하는 들판의 폭이 엄청 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잠시 후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에 복귀는 합니다만 말러의 참신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죠. 이 트럼펫과 어우러지는 호른은 마치 사냥꾼의 합창 같지만 사실은 대지를 깨우는 자연의 엄청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말러는 4악장 마지막에서 호른주자들에게 모두 일어서서 연주하라고 아예 악보에 지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 후 “뻐꾹 뻐꾹” 하는 소리(4:25)가 자연스럽게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들판에 나온 주인공을 묘사하는 첼로의 노래(역시 하행 4도)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화사해집니다. 이 부분은 자신의 노래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 친구 요한나 리히터(Johanna Richter)를 위해 말러가 작사와 작곡을 모두 한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의 둘째 곡 〈오늘 아침 들판을 지날 때(Ging heut’ Morgen über’s Feld)〉를 아예 통째로 가져온 것입니다.

 

 

쨍그랑거리는 트라이앵글을 포함한 모든 오케스트라가 꽃과 나무, 그리고 새들로 화사한 그리고 봄으로 충만한 들판을 정말 제대로 묘사합니다. 그러다가 큰 북이 울리면서 마치 맑은 하늘에 구름이 잦아들 듯 아니면 어떤 녀석이 산통을 깨려고 하듯 다소 음산하게 분위기가 바뀝니다(8:53 이하). 그러나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호른이 이러한 부정적인 분위기를 억제하고 다시 싱그러운 자연을 가져옵니다(11:47 이하). 그러다가 서서히 긴장을 고조되며 트럼펫이 울리고(14:24 이하), 참았던 그 무엇이 분출되어 나오듯 오케스트라가 폭발합니다(15:05 이하). 소위 ‘개파(Durchbruchsform)’라고 해서 말러가 다른 교향곡에서도 분위기 반전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오디오 볼륨을 안 낮추면 층간 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하기 십상입니다.

 

코다 마지막은 좀 뜬금이 없는데, 호른의 힘찬 울림 이후 관현악에 이어 팀파니가 하행 4도(여기서도 뻐꾸기 울음의 하행 4도)를 거듭 가격하면서(16:39) 갑자기 끝을 맺습니다.

 

2악장

 

1악장이 숲속의 신선한 에너지로 충만하다면 2악장은 말러가 ‘돛을 완전히 올리고(full sail)’라고 표기했듯이 푸른 바다의 상쾌함으로 넘쳐납니다. 마치 요트를 타고 비키니 입고 신나게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남녀 젊은이들을 연상케 하는 부분입니다. (이 2악장은 그냥 아무 것도 안 입어도 멋이 나는 젊은이처럼 템포도 자연스럽게 그대로 가져가야 신선한데, 에스트라다는 다행스럽게도 이 2악장에서도 심각하고 거창한 폼을 잡지는 않네요^^)

 

아무튼 말러는 관악기 연주자들에게 벨(악기 주둥이 나팔 같이 펼쳐진 부분)을 높이 쳐들라고 악보에 지시하고 있습니다. 동영상의 18:50 부분을 보면 뒤쪽에 관악기 주자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카메라 잡는 분이 이 부분을 클로즈업을 시키고 있지요. 악기의 벨 부분을 높이 쳐들면 소리도 크게 들리고 또 소위 우쭐한(cocky) 분위기, 한껏 뽐내며 에너지로 충만한 느낌이 드는데 실제 공연 때는 다들 이 부분 주목해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그냥 활털로 현을 문지르는 것이 부족한 듯 활대(나무부분)로 현악기 줄을 때려 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습니다(위 동영상 19:45 이후 부분인데, 이 부분은 아쉽게도 클로즈업 되지 않았네요). 참고로 이러한 주법을 콜레뇨(col legno) 주법이라고 부르는데, 악기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현악기 주자들이 매우 싫어하는 주법입니다.^^

 

어쨌든 음악은 금발의 미녀들을 태우고 바다 위로 한껏 폼 잡으면서 항해하는 신선한 느낌이 사라지고 갑자기 무도회 분위기로 돌변합니다(20:50). 비엔나 풍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포르타멘토를 가득 실은 현이 왈츠를 연주합니다. 요트를 같이 타던 젊은 여자들과 클럽에 왔는지 녀석들은 여기서 시간을 제법 길게 보냅니다. 그 후 음악은 다시 요트 타고 바다로 나가는 원래의 분위기로 복귀한 다음 마지막에 자연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호른이 시원하게 연주되면서 폭발적으로 2악장은 끝납니다.

 

1악장에 이어지는 2악장의 위와 같이 싱싱한 활어회 같은 이런 분위기는 곧 이어지는 3악장의 칙칙한 분위기와 엄청난 대조를 이루기에 초연 때 사람들이 3악장에서 크게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악장

 

아래 그림은 말러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슈빈트(Moritz von Schwind)의 판화 ‘사냥꾼의 장례식’입니다. 짐승들이 사냥꾼의 장례식을 치르는 이 독특한 그림처럼, 말러는 실연의 처절한 심경을 더블베이스가 연주하는 동요 선율로 표현합니다.

 


곧 구슬픈 집시풍 음악이 나오는데(28:02 이하) 이것은 마치 유태인들 결혼식 음악의 변형인 듯합니다. 헤어진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 몰래 찾아가 축가를 뒤에서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못난이가 연상되는데 우리들에게 좀 알려진 올드 팝송 〈아이 웬 투 유어 웨딩(I went to your wedding)〉 류의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중간부(31:10 이후)에는 이 교향곡의 기초가 된 말러의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4곡 〈푸른 두 눈동자(Die zwei blauen Augen)〉가 바이올린의 황홀한 선율로 연주됩니다.

 

 

그대의 두 푸른 눈동자는 나를 넓은 세상으로 보냈네

나는 떠나가야만 하네

나의 정든 땅에서

아! 저 푸른 눈동자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나를 어지럽히는가?

지금 나는 끝도 없는 괴로움과 서러움에 잠기네

고요한 밤 나는 떠나네

고요한 밤 나는 어두운 들에

아무도 작별인사를 말해주는 사람조차 없네

안녕, 안녕, 안녕!

나의 길동무는 사랑과 괴로움이었네

거리의 피나무 밑에서

잠시 쉬며 지난날에 상처를 생각하네

피나무 밑에서

꽃눈이 내리는 속에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잊어버렸네

아 모든 것이 다시 좋아졌어!

모두 다, 모두 다, 사랑과 슬픔,

세상, 꿈, 모두 다!

 

이 중간부에서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의 주인공이 과거 좋을 때 희망의 말을 속삭였던 린덴바움, 그 피나무 아래에서 지난날의 상처와 괴로움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말러를 봅니다. 그러나 큰 북의 음침한 울림과 함께 분위기는 다시 칙칙한 현실로 돌아옵니다.

 

To be continued. . .

 

작성 '19/12/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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