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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1번 이야기 (2)
작성9달 전조회1641추천7

4악장

 

 

말러 교향곡을 듣다가 아파트 소음 민원이 많이 생긴다고들 합니다. 말러 교향곡이 다 그렇지만 1번에서도 이런 갑작스런 관현악의 포효가 자주 등장합니다. 다만 그러한 폭발적인 음향들이 각기 국면마다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그 성격을 달리 한다는 것을 알면 이해가 쉽습니다.

 

4악장 서두에 나오는 폭발적 음향은 마치 상처받은 영혼의 울부짖음같이 매우 지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36:35). 하필 말러의 실패한 첫사랑 요한나 리히터가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프리마돈나였으니. . .

 

이러한 울부짖음 이후 곧 말러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전 여자 친구의 따스한 품을 그리며 복받치는 슬픔을 노래합니다(40:27이후 특히 42:01이하).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표현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 부분은 처절하면서도 찬란한 음향을 가진 현악기들이 담당하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현실을 직시한 듯 바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43:47). 그리고 거의 이성을 잃은 듯 관현악이 이리 저리 헤매다가 이 국면을 돌파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데(46:00), 그 이후에 소위 과거를 떨쳐버리고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듯 승리의 메시지(46:25)가 나옵니다. 이 승리의 주제는 1악장 서두에서 자연을 묘사할 때 기저에 깔렸던 연속 하행 4도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점은 앞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은데, 이제 청년 말러의 마음이 거의 정리된 듯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하지만, 말러는 여전히 그녀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곧 뒤를 돌아봅니다(48:08).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대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청년 말러는 전 여자 친구의 고혹적인 푸른 눈동자를 떠올리며 탄식하며(특히 50:27 이후의 그리움 가득한 오보에의 선율은 더없이 애처롭습니다) 다시 복받치는 감정에 사로잡히다가, 비수같은 현악기의 날카로운 울림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51:30).

 

그리고 서서히 감정을 추스르며 당당하게 옷깃을 여미고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다시 폭발적인 음향을 통해 분위기는 급반전을 이룹니다(53:30). 그제야 비로소 완전한 승리의 주제(54:00)가 노래되며 환희와 기쁨이 가득한 긍정의 세계로 주저 없이 걸어 나갑니다. 이 국면에서 말러는 호른 주자들이 모두 다 일어서서 연주하라고 악보에 지시를 해두었지요(54:18이하).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음향(55:03)은 정말 듣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 모두 엄청나게 거대한 큰 힘의 일부가 된 듯한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아픈 실연의 상처를 위대한 자연의 치유력으로 극복하고 오직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거대한 교향곡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려는 젊은 거장 말러의 당찬 결의를 엿볼 수 있는 정말 멋지고도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성 '19/12/24 16:39
fa***수정 삭제

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19/12/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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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이 글을 읽고 어제는 아바도와 블레즈가 시키고향과 녹음한 음반을, 그리고 바비로리가 할레와 녹음한 연주를 연속해서 들었습니다.
글을 아주 성실하게 쓰셔서 읽는 사람이 이런 글을 편하게 본다는게 면구스러울 정도입니다.

19/12/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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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성탄절에 들으신 음반들이 모두 말러 1번을 좋아하게 되면 피해갈 수 없는 연주들이네요. 위의 말러 교향곡 1번 이야기는 사실 요즈음에 새로 쓴 글은 아니고 이전에 책에 담았던 글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올린 것입니다. 격려의 말씀에 힘입어 기회가 되면 짧은 글들 중에서 한 두 개 더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12/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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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말러의 교향곡은 대부분 거대하다가 보니까 1번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하고(다른 번호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참 아름답지요... 저는 발터 컬럼비아의 연주로 첨 들었고 담에는 라인스도르프-보스턴 연주로 들었습니다.

19/12/2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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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저의 경우에는, 나머지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1번이 매우 편합니다.

처음 접했을 때, 1번 빼고는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거지.... 난 어느 부분을 들어야 할까.
종잡을 수 없는 고민에 그냥 연주가 끝났던 기억입니다.

저만 그런건지 들을 수록 어려워요.

1번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19/12/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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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누구든 친한 친구가 되고 나면 그가 굳이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지 알 필요도 없이 그저 좋아지는 것처럼 말러의 교향곡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말러는 금방 옆자리를 허락하지는 않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2번 부활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9/12/2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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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

대지의 노래를 포함한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시리즈로 이렇게 해설해 주었다면 하는 바람이 드는 글이네요.
이제는 읽을 수 없는 나팔수의 말러에 대한 열정적인 글들이 연상됩니다.
고클에서 김문경님도 아주 상세하게 말러에 대한 열정과 경의를 보여주셨었죠.
오랜만에 보는 좋은 글입니다.

19/12/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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